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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바보상자 아닌 걱정상자

다이어리

by yaoya 2022. 2. 22.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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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TV를 바보상자니 뭐니 해도 거의 모든 사람이 TV를 즐겨 시청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도 물론 예외는 아니어서 무료(無聊)한 한낮에는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AFKN의 드라마라던가 게임 등에 채널을 맞추기도 하고, 축구 배구 같은 국제게임의 위성중계가 있으면 그것이 한밤중이라도 꼭 시청을 하고야 만다. 전에는 가족끼리 채널 싸움하는 일이 허다했었지만 이제 집집마다 수상기를 2대 이상 가지고 있으니 싸울 일도 없고...

아무튼 수상기 보유숫자가 놀랍도록 늘어나는 것만 보아도 얼마나 바보상자를 많이 애용하는가를 알 수 있다.  헌데 요즈음 TV를 보고 있노라면 즐거움 보다 짜증이 앞서는 것은 나만의 신경과민인가. 드라마 속의 아귀다툼, 단세포적인 쇼 진행과 열광하는 십대들의 괴성, 코미디언들의 상서롭지 못한 언어와 민망한 제스처 등등 채널을 어디로 돌리든 천편일률적으로 저질스럽다.  인기연예인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기용된 소위 MC라는 프로 진행자는 불분명한 발음에 더듬기까지 하면서 저 혼자 흥분한다.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그런 X-세대 반짝스타들을 각 방송국에서 경쟁적으로 끌어다가 프로의 색깔에  맞건 안맞건 마구잡이로 등장시킨다는 것이다.

우리의 10대들은 그들에게 매료되어 환각 속으로 빠져든다. 그들이 걸치고 나오는 천박하고 우스꽝스러운 차림새를 거리낌없이 흉내내고, 그들이 만들어 내는 국적불명의 유행어를 아무데서나 킬킬대며 구사하고, 반벙어리 같은 노래와 선정적인 춤을 따라 하면서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10대들! 그들을 바라보면서 이 나라의 앞날이 걱정된다고 하면 과연 방송국측은 자신있게 그건 과대망상증이고 쓸데없는 노파심이라고 일소해 버릴 수 있을 것인가.

TV프로에는 분명 약이 되는 것과 독이 되는 것이 있을 터인데, 요즘의 TV프로에는 약이 되는 것보다 해나 독이 되는 것이 월등하게 많아졌음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우리는 TV에서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받아들인다.  그것이 고귀한 문화유산일 때 우리의 안목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높아질 것이고 그것이 해맑고 따스한 사랑일 때 우리는 삶의 환희를 가슴 그득히 끌어안을 것이다. 반대로 그것이 조잡하고 유치하면서 포악하기까지 하다면?

TV프로 하나를 제작하는데 쏟는 막대한 노고를 짐작 못하는 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이한 태도로 그저 타사(他社)나 타국(他國)의 프로를 거르지도 않고 그대로 표방하는 것을 묵과 할 수는 없다. 더욱이 그것이 보잘것없고 천박하고 야하기만 함에 이름에랴.

모처럼 온 가족이 TV 앞에 앉았다. 하지만 골든 아워의 골든 프로가 끝나기도 전에 저마다 궁시렁거리며 자리를 뜨고 말았고, 마지막까지 버티던 나도 "병신 같이, 한심해서...." 결국 TV를 끄고 말았다.

 

 

 

출처: 有炫之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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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정열이라는 게 남아있을 때였습니다.
이 글을 써서 KBS로 보냈더니(타이프로 쳐서 우송했지요^^) 충고 감사히 받아들이겠다, 뭐 그 비스끄름한 글과 함께 만년필 세트를 보내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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