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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덜렁이

다이어리

by yaoya 2022. 2. 1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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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작은 한일친선모임에 참석도 하고, 벚꽃구경도 할 겸해서 사나흘 일본여행을 떠날 때의 이야기다. 비자를 받고, 앞으로 1주일 남았구나, 생각하면서 대한항공에 좌석예약을 확인할 양으로 비행기표를 꺼낸 나는 그만 눈앞이 캄캄해졌다. 티켓 날자가 3월 30일이 아닌 31일로 되어있지 않은가! 기가 막혔다. 티케팅할 때 분명히 3월 30일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해서 31일로 둔갑을 했단 말인가... 갑자기 머릿속이 텅 비면서 도무지 아무생각도 안나고, 맥이 쭉 빠진다.

"어머니가 30일이라고 한 게 창구 아가씨 귀에는 31로 들렸나보죠. 받았으면 그 자리에서 확인을 하는 게 상식인데, 들여다보지도 않고 그냥 집어넣고 돌아온 어머니한테 문제가 있어요. 암튼 내일 일찍 찾아가서 30일로 바꿔달래세요. 근데 30일이 토요일이니 좌석 남아있을라나 모르겠네"

장남이라는 작자가 남의 얘기하듯 내뱉고는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밤새 제대로 잠도 못 잔 나는 출근하는 아들을 따라 집을 나섰다. 9시 정각에 서소문 대한항공에 도착한 나는 티켓날자가 잘못되었다면서 날자를 30일로 바꿔줄 것을 부탁했다.
"마일리지로 끊으셨네요.... 근데 어쩌죠? 빈 좌석이 없는데요"
"없어요? 어머, 큰일났네. 그날 오후 중요한 회의가 있거든요. 참석 못하면 낭팬데... 다음 10시20분 편도 없나요?"
나는 다리를 바꿔 꼬면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침에 아들아이가, 캐리어우먼처럼 슈트차림을 하고 가서, 굉장한 회의에 참석하는 듯 연기를 해보라고 실실 웃으며 일러줬던 것이다. 예쁘장하게 생긴 젊은 담당 아가씨가 나를 흘깃 처다보더니,
"잠시만요. 음 9시20분에 출발하는 편에 좌석 하나 남았네요. 그거면 되겠습니까?"
"그럼요. 아아 살았다! 고마워요"
나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이 나이에 캐리어우먼은 당치도 않지만, 내딴에 품위있게 보이려고 아침 내내 애쓴 보람은 있었나보다.

표를 받아들고 나오면서, 이 나이가 되도록 덤벙대는 버릇을 못 고친 나자신이 한심하기만 했다.                

 

 


-有炫之家 (2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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