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수필] 공포의 32분

다이어리

by yaoya 2022. 1. 31. 20:50

본문

앞차를 그냥 보낸 것이 최대의 실수였다. 사람이 많은 듯 싶어 곧 뒤따라오는 다음 버스에 탄 것이 말이다. 내가 차에 오른 뒤 미처 중심도 잡기전에 버스는 덜커덕 몸부림치더니 달리기 시작했고 그 순간부터 난 운전기사의 곡예운전을 몸서리치면서 체험한 것이다.

나는 머리위에 매달린 손잡이를 움켜쥐고 다리까지 벌려서 몸을 고정시킨뒤 고개를 돌려 기사 아저씨의 얼굴을 살폈다. 무슨 화나는 일이 있나, 교통순경이 딱지라도 떼어서 선물했나, 하지만 분위기가 그런것 같지는 않았다. 아무튼 그는 스피드를 내면서 모든 차가 안중에 없는듯 지그재그로 달리더니 옆 버스와 1 밀리미터 간격을 두고 경주를 하다가 아슬아슬하게 추월을 하고 나서는 만면에 웃음까지 띄우는 것이었다. 난 눈을 감고 하나님을 찾았다.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는데, 우리 아이들 시집장가도 아직 보내지 못했는데 여기서 버스사고로 죽기는 정말 싫었다.

20여년 전 어머니가 단풍놀이 가셨다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뒤부터 난 탈것에 대해 유난스레 과잉반응을 보였다.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 공포로 부터 서서히 벗어나긴 했지만 아직도 난폭운전엔 소름이 끼친다. 난 내리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큰일이 나는 중요한 약속이 있는 것이다. 기사 아저씨는 클랙슨을 마구 빵빵 울려대고, 난 그때마다 경끼를 일으키며 손목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이번에 그냥 내려 버릴까, 근데 이 시간에 무슨 재주로 택시를 잡는담."
갑자기 옆차가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옆으로 비켜서자 우리 기사 어저씨는 서 있는 승객 모두를 반쯤 앞으로 고꾸라트린 채 총알같이 노란불을 곁눈질하면서 교차로를 넘어가는 것이었다. 차 안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모두 겁먹은 얼굴로 손잡이만 죽어라고 움켜쥐고 있었다. 세상이 왜 이렇게 변해간단 말인가. 어째서 운전 좀 조심해서 하라고 아무도 말하지 못하는 것인가. 뭐가 무서워서...

또다시 요동을 치면서 차가 정류장에 멈춰섰다. 난 문이 열리자 마자 나이에 걸맞지도 않은 잽싼 동작으로 차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헛구역을 했다. 정말 목숨을 건 공포의 32분간이었다. 

 

 

 


* 15년전 쯤이던가요, 두산동아의 사보에 실렸던 것이 한 구석에서 나왔군요.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