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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 선구자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과 브랜드 스토리

패션&디자인

by yaoya 2020. 10. 16.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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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과 생 로랑 리브 고슈Saint Laurent Rive Gauche의 디자이너들

◇ 알버 앨바즈Alber Elbaz / 톰 포드Tom Ford / 스테파노 필라티Stefano Pilati ◇

◇ 에디 슬리먼Hedi Slimane / 안토니 바카렐로Anthony Vaccarello ◇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은 1936년 당시 프랑스령이었던 북부 아프리카의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그는 가정에서는 행복했지만, 소심하고 동성애적인 성향 탓에 학교생활에는 적을 하지 못하였다. 집에서 많은 여성들에 둘러싸여 지내던 그는 패션에 관심이 많았으며, 1954년에는 국제 양모 사무국 디자인 컨테스트(International Wool Secretariat Competition)에 참가하여 18살의 나이에 ‘드레스’ 부분에서 1등을 수상하게 되었다.


1955년부터 파리 최대 쿠튀르 하우스인 크리스티앙 디오르Christian Dior에서 디오르의 조수로 근무하게 된 이브 생 로랑은 어린 나이였지만 스승인 디오르에게 재능을 인정받았으며, 1957년 디오르가 갑자기 타계하자 21살의 이브 생 로랑이 후계자로 지목되어 디오르 하우스의 아트 디렉터를 맡게 된다. 이듬해 어깨 폭이 좁고 아래로 갈수록 넓어지는 트라페즈 라인(사다리꼴 라인, trapeze line) 컬렉션을 선보이는데, 전통적인 우아한 스타일에 젊은 감각을 가미했다는 극찬을 받으며, 파리 쿠튀르의 황태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천재들은 통하는 것일까. 칼 라거펠트처럼 이브 생 로랑 역시 상류층을 위한 오트 쿠튀르에 지루함을 느끼고, 앞으로의 패션계를 이끌어갈 젊은 세대의 문화와 패션에 눈을 뜨게 되었다. 첫 번째 과감한 시도가 혹평을 받으며 실의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의 동성 연인 피에르 베르제(Pierre Berge)와 함께 1961년 이브 생 로랑 쿠튀르 하우스(Yves Saint Laurent Couture House)를 설립하고 1962년 대망의 첫 컬렉션을 개최하였다. 


1966년에 젊으면서도 덜 부유한 여성들을 위한 ‘생 로랑 리브 고슈(Saint Laurent Rive Gauche)’이라는 기성복 라인을 시작하였다. 혁명적인 이브닝웨어 '르 스모킹'(Le Smocking, 턱시도의 프랑스 용어)을 시작으로 이브 생 로랑의 팬츠 슈트(pant suit)는 여성복의 새로운 장르가 되었으며 자신감에 찬 현대 여성을 위한 새로운 스타일을 매 시즌 소개했다.

이브 생 로랑의 의상을 즐겨 입었던 까뜨린느 드뇌브Catherine Deneuve(1966) / 르 스모킹Le Smocking 패션(1975)


북부 아프리카 알제리 출신인 그는 다른 파리 출신 디자이너들과는 달리 비서구권의 문화에 일찍 눈을 뜰 수 있었고, 이국적인 풍경, 색채감, 문화, 전통 의상에 매료되었다. 이런 경험들은 그의 독창적이고 천부적인 컬러 감각과 함께 다채로운 컬렉션을 탄생시켰으며, 아프리카 출신의 블랙 모델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만든 선구자이기도 하다.


이브 생 로랑과 피에르 베르제는 모던 아트와 현대 예술 작품의 열렬한 수집가였다. 이런 문학과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이브 생 로랑은 다른 예술가들과 활발한 교류와 협업을 통해 새로운 컬렉션을 완성하기도 하고, 평소 존경하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소재로 삼아 입을 수 있는 예술로 재탄생시켰다. 가장 유명한 작품이 지금까지도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는 1965년 가을에 발표한 몬드리안 드레스. 그밖에도 앤디 워홀Andy Warhol의 팝아트 의상을 비롯하여 수많은 작품을 패션으로 표현해내었다. 


프랑스 정부는 그의 공로를 인정해 2000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했다. 이브 생 로랑은  2002년  파리의 퐁피두 센터에서 이브 생 로랑 디자인 하우스의 40주년을 기념하는 패션쇼를 마지막으로 65세 나이에 은퇴하였고 2008년 6월 1일 지병인 뇌종양으로 타계하였다.



새로운 스타일과 예술성에 가치를 두고 걸어온 이브 생 로랑의 영향력으로 Saint Laurent Rive Gauche를 거쳐 간 디자이너는 역시 현재 최고의 자리를 인정받고 있다. 


1998년에는 지금의 랑방Lanvin을 일으켜 세운 알버 앨바즈Alber Elbaz가 영입되어 여성복 컬렉션을 발표했지만 세 번의 시즌으로 짧은 인연을 끝맺었고, 당시 남성복은 에디 슬리먼Hedi Slimane이 맡아 현대적인 스타일을 선보였다. 



구찌Gucci 그룹이 경영권을 인수하면서 1999년 구찌Gucci의 크리에이티브 디자이너인 톰 포드Tom Ford가 뒤를 이어 2001년 봄/여름 시즌부터 이브 생 로랑 컬렉션을 이끌며 특유의 섹시 감성을 선보였으나 2004년에 자신의 라벨을 출시하기 위해 떠났다.



누구보다 이브 생 로랑을 충실하게 계승한 사람은 스테파노 필라티Stefano Pilati다. 1965년 이탈리아 출신으로, 아르마니 남성복 어시스턴트 디자이너를 거쳐 프라다Prada에 입사, 미우미우Miu Miu에서 경험을 쌓고 2004년 이브 생 로랑의 크리에이티브 디자이너 자리에 오른다. 이탈리아 출신답게 옷을 잘 입는 것으로 알려진 스테파노 필라티는 새로운 테일러링과 패브릭으로 재현하는 디자이너로 평가 받고 있다.



2012년 Saint Laurent Rive Gauche는 이전에 ‘디올 옴므’를 이끌며 ‘스키니 패션(몸에 꼭 맞는 패션)’의 시대를 연 주인공 에디 슬리먼Hedi Slimane이 크리에이티브 디자이너 자리를 넘겨받아 새로운 이슈를 만들었다.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브랜드 네임을 Saint Laurent Paris로 바꾸고 1966년 이브 생 로랑 하우스의 느낌을 재현하여 리뉴얼하는 등 활기 넘치는 4년을 보내며 쿠튀르를 부활시켰다.



2016년 베르수스 베르사체Versus Versace의 크리에이티브 디자이너 안토니 바카렐로Anthony Vaccarello가 바통을 넘겨받았다. 이브 생 로랑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에 대한 이해를 우선시하면서도 강력한 비전을 제시한 그는 2017년 F/W 시즌을 맞이하며 처음으로 런웨이에서 남성복과 여성복을 함께 선보였다. 이브 생 로랑과 에디 슬리먼의 공백을 채우기 위한 부담감을 떨쳐내고 자신만의 패션 세계를 당당하게 표현하며 존재감을 뽐내는 조용한 승부사다. 

2017 F/W Ready-To-Wear


사람은 바뀌어도 브랜드 철학은 이어지고 있는 이브 생 로랑은 앞으로도 파리의 상징으로 남을 것이다.


“패션은 사라지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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