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역은 경기장처럼 넓고 복잡했다. 많은 시간을 들여가며 사전준비를 했건만 막상 역 안에 들어서자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우선 자동판매기에서 표를 구입해야 하는 일이 난감했고, 가마쿠라행 요코스카선의 개찰구를 찾아내는 것도 문제였다. 우왕좌왕하기를 20여분, 겨우 JR요코스카선에 올라탄 나는 안도의 숨을 후-하고 내쉬었다.
도쿄에서 가마쿠라까지는 겨우 1시간 거리, 그렇지만 내 마음은 성급하게도 그 곳을 향해 달음질한다. 내가 가마쿠라를 이토록 갈구하는 이유는 가마쿠라 바쿠후(幕府)가 위세를 떨쳤던 천년의 고도(古都)를 답사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오직 한 가지, 한국계 작가인 타치하라 마사아끼(立原正秋)가 살아 숨 쉬던 곳, 그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잉태된 곳, 그가 조용히 잠들어 있는 곳, 바로 그곳을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그의 작품을 대했던 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일본의 최고 문학상이라는 나오키(直木)상을 수상한 '시로이 케시(白い罌粟-하얀양귀비)'를 비롯하여 한일 혼혈 형제의 아픔을 그린 '쓰루기가사키(劍ケ崎)'등을 읽으면서 내가 받은 느낌은 감동을 넘어 차라리 충격이었다. 완전히 그에게 매료된 나는 그의 작품을 찾아 명동 뒷골목 책방을 훑고 다녔다. 펜과 더불어 고고하게 살다가 54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한 타치하라 마사아끼! 그의 작품은 황홀하면서 애틋하고 예리하면서 섬세했다. 그의 격조 높은 글을 대할 때마다 난 얼마나 많은 희열과 행복을 맛보았던가.
키타가마쿠라역(北鎌倉驛)에서 내린 나는 그의 장례식이 거행되었다는 토케이지(東慶寺)를 찾기 위해 엔가쿠지(圓角寺)의 반대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봉정사에서 보낸 그의 종파는 임제종(臨濟宗)이라던가. 토케이지는 그다지 넓지는 않았지만 품위가 느껴지는 절이었다. 선사(禪寺)인 이 절은 정원의 꽃이 아름답기로 손꼽힌다고 하는데,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흐드러지게 핀 철쭉과 창포가 봉우리를 잔뜩 끌어안은 작약과 어우러져 내 눈을 말끔히 닦아준다. 젊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본당을 기웃거리며 안내원의 설명을 듣고 있는 동안 난 정원의 돌부처 곁에 서서 주지스님의 장례식 염불소리를 환청(幻聽)했다.
절 어귀에서 버스를 타고 가마쿠라의 명동인 와카미야다이지(若宮大路)로 나갔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 혼자만의 넉넉함, 처음 밟는 낯선 거리의 야릇한 냄새, 귀에 설은 행인들의 대화, 나는 거리낌 없는 자유를 누리면서 큰길가의 골동품점과 전통공예품점등을 기웃거렸다. 750년 전통을 자랑하는 가마쿠라보리(鎌倉彫り) 목공예품이 탐나기는 했지만 예상외로 비싸 그저 감상만...
걸어 내려오는데 인주 빛의 거대한 도리이(鳥居-일본특유의 거대한 기둥 문)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가마쿠라관광의 중심인 쓰루가오카하치만구(鶴ケ岡八幡宮)의 입구였다. 가마쿠라바쿠후를 세웠던 미나모토(源)가의 수호신을 모신 거대한 궁전으로, 이(源平) 두 연못의 수련과 모란꽃 정원이 일품이라고 한다. 견학 온 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룬 경내를 곁눈질하면서 나는 시내버스에 올랐다. 처음 탈 때는 중간 문으로 타고 앞문으로 내리면서 요금을 내는 것이 우리와 반대여서 당황했지만 이번에는 익숙한 듯 중간 문으로 올라탔다.
우거진 숲을 병풍처럼 두르고 앉은 스이젠지(瑞泉寺)는 그가 생전에 즐겨 쓰던 유현(幽玄)이라는 표현에 걸맞게 그윽하고도 신비스러운 분위기에 쌓여 있었다. 기어이 여기까지 왔구나. 본당 앞에 선 나는 숙연한 마음으로 합장하고, 고개 숙여 그의 명복을 빌었다. 본당 뒤에는 근래에 발굴, 복원되어 화제를 불러일으킨 무소소세키(夢窓踈石, 몽창국사) 작품의 바위정원이 있었다. 조각 수법으로 깎아 만들었다는 폭포 연못 섬 다리들이 생경하기만 하다.
타치하라의 묘는 절 뒤의 산자락에 있다는데, 그곳에는 가와바타야스나리(川端康成)를 비롯한 유명 문인들의 묘가 많아, 팬들에 의해 오염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비공개였다. 지조도오(地藏堂) 종루(鐘樓) 등을 돌아보며 잠시 거닌 뒤 나무 그늘에 앉았다. 바람소리 새소리가 나의 아쉬움을 달래듯 귓가를 맴돈다. 아침 내내 화창했었는데 스이젠지를 나설 무렵 갑자기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우비를 준비하지 않아 걱정스러웠으나 하세(長谷)의 고쿠라쿠지(極樂寺)와 유이가하마(由比ケ濱)를 꼭 보아야 하겠기에 에노덴(江ノ電) 전차를 탔다. 넉넉함을 모르는 일본답게 하세역(長谷駅)은 정말 성냥갑만 했다.
고쿠라쿠지 역에서 내려 밖으로 나오자 바로 길 건너가 절이었다. 동네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깊은 산속처럼 적막하고 고요한 이 절은 '노코리노유키(残りの雪, 잔설)'라는 소설에서 여주인공이 괴로움을 달래기 위해 때때로 찾아 드는 곳이다. 구부러진 노송 앞에 서서 소설 속을 넘나들며 감회에 빠져 있는데 먹구름이 점점 경내를 짓누른다.
유이가하마에 다다르자 천둥이 치기 시작하고, 태평양은 시커멓게 성이 나 일렁거리고 있었다. 한여름이면 피서객들이 북적댄다는 바닷가는 철이 이른 탓인지 한산하기만 했다. 타치하라의 단편소설을 읽으며 그리던 비치하우스, 유보도로(游步道路)등의 환상적인 분위기는 어디에도 없었고, 깨끗하지도 곱지도 않은 모래사장에는 서너 개의 망가진 보트만이 뒹굴고 있었다. 바닷가의 카페를 찾았다. 창가에 앉아 따끈한 커피를 마시며 뿌옇게 변하는 태평양을 바라보지만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하늘 모양이 불안하기만 하다.
찻값을 치르며 에노덴역(江の電驛)을 묻는 내게 마담은 한적한 주택가를 가리킨다. 옛 모습 그대로의 고옥, 나무로 된 격자무늬 현관과 창틀, 작은 일본식 정원등 일본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골목을 걸어가며 길을 잘못 들었나 걱정하는데 흰 담이 끊어지면서 조그마한 역이 나타났다. 비질을 하던 늙수그레한 역무원이 칸막이 안으로 들어가 표를 내주면서 13분 후에 전차가 도착한다고 일러준다. 아무도 없는 플랫폼에 동그마니 혼자 앉아 타치하라에게 아듀-를 고하는데, 굵은 빗방울이 후두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有炫之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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